2011년 5월 8일 18시 4분에 작성한 글입니다.
모란이 피기까지는
-김영랑
모란이 피기까지는
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
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
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
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
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
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
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
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
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
모란이 피기까지는
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
찬란한 슬픔의 봄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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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향집 장독대에 핀 모란은 항상 작약꽃보다 일찍 피웠다. 크기도 크기려니와, 화려함은 과연 꽃 중의 왕이라 할만 한다. 모란을 '부귀화'라고도 하며, 꽃 중의 왕이라 하여 화왕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.
중국에서 모란을 목단이라고 하며, 한대는 중국의 국화로 사랑을 받은 적도 있다. 우리나라에 모란이 들어온 것은 신라 시대 진평왕 때였다.
<삼국유사>에 보면 당 태종이 모란 그림 한 점과 모란꽃 씨 석 되를 보내 왔다고 한다. 아직 왕위에 오르지 않고 공주였던 선덕 여왕이 그림을 보고 말했다.
"그림은 아름다우나 벌과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겠구나."
이듬해 그 꽃씨를 심어서 꽃을 피워 보았더니 과연 향기가 없어 공주의 총명함에 놀랐다고 한다. 그 공주가 나중 신라를 다스린 선덕 여왕이 되었던 것이다.
어버이 날이 되면, 생각나는 꽃은 카네이션이 아니라 바로 이 목단꽃, 바로 모란이다.
어릴 때 어머니가 목닥꽃이라 하여 목탁꽃인 줄 알고 있었으나, 이것이 바로 모란이였다.
장독대 모란꽃이 피면, 마당 전체가 환하게 보였다~!
사진 뒤에 어스프레 보이는 것이 대추나무인데...벌써 죽은지 오래다.
이 나무에 TV안테나를 붙들어 맸던 기억이 난다.
TV가 안 나올 때면, 항상 이 대추나무 밑에서..
"나오나?","안 나오나?"
막내누나와 열댓번을 하고나서야 TV를 보곤했었다~!